오늘날 소비문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 다채롭고 편리하며, 동시에 환경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2020년 이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음식 배달과 택배 수요가 전례 없이 증가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재택근무와 외출 자제로 인해 밀키트, 일회용품, 포장재 사용이 꾸준히 확대되면서 각종 폐기물량이 큰 폭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라는 개념이 한층 부각되고 있는데, 제로웨이스트는 생산부터 소비, 폐기 전 과정에서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식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내 제로웨이스트 매장의 시초로 알려진 ‘더피커(The Picker)’ 역시 소비자들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무포장’ 판매를 넘어 사회 전반에 변화를 일으킬 만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로웨이스트 개념과 사회적 의의

제로웨이스트라는 용어는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종합폐기물 관리위원회가 폐기물처리 정책목표를 설정하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경부터 관련 사례가 조금씩 나타났으나, 본격적으로 대중적 관심을 얻은 시기는 코로나19로 인해 생활폐기물이 가파르게 증가한 2020년 전후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환경부 자료(https://www.me.go.kr)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전국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전년 대비 약 14%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는데, 이러한 수치는 온라인 소비와 배달 문화가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발생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로웨이스트가 가지는 사회적 의의는 무엇일까요? 우선, 이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소비문화’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기존의 ‘편리함’을 추구하던 소비 패턴에서 벗어나, 폐기물을 줄이고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책임 소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대나무 칫솔, 고체치약, 리필 스테이션을 통한 세제 구매 등은 작은 실천이지만, 장기적으로 해양쓰레기와 매립지 부담을 크게 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제로웨이스트는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 생산·소비 전 과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산업계 전반에 환경 설계(eco-design)나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관점이 반영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단순히 ‘친환경 제품 사용’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 주권’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을 내세워 과대포장을 일삼고, 그러한 포장재의 폐기 책임을 고스란히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로웨이스트와 같은 친환경 소비문화가 확산되면, “쓰레기의 부담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소비자들은 생산자들에게 더욱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같은 요구는 다시 사회 전체의 제도적·정책적 변화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제로웨이스트는 환경보전 차원을 넘어, 기업과 개인, 정부가 새로운 책임 분담 방식을 모색하도록 하는 ‘사회 구조적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국내외 제로웨이스트 확산 현황 및 통계
제로웨이스트는 2010년대 후반부터 유럽, 북미를 중심으로 소규모 매장과 지역 커뮤니티 단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프랑스 파리의 ‘비오코프(Biocoop)’, 영국 런던의 ‘더 리필 스테이션(The Refill Station)’ 등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으며, 재활용이 쉬운 소재와 최소한의 포장만을 사용하는 장점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습니다. 2021년에는 미국 뉴욕주가 제로웨이스트 촉진을 위해 세액 공제와 보조금 프로그램을 시행함으로써 기업 차원에서 무포장·친환경 소재 개발을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6년 서울 성수동에 둥지를 튼 ‘더피커’를 국내 1호 제로웨이스트 샵으로 꼽습니다. 그리고 2020년 전후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유통업체들이 다회용컵 시스템을 시범도입하거나, 재사용 포장재와 관련한 시범사업에 나서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통계청 자료(https://kostat.go.kr)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친환경 제품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약 25% 이상 성장했고, 이러한 성장세는 대외 환경규제 강화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트렌드로 인해 한동안 지속될 전망입니다.
아래는 2023년을 기준으로 한 주요 국가별 제로웨이스트 확산 현황을 요약한 표입니다.
국가 | 제로웨이스트 매장 수(추정) | 주요 지원 정책 및 동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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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약 500개 이상 | 일부 주(州)에서 제로웨이스트 인증제 도입, 재사용 포장재 보조금 등 실시 |
프랑스 | 약 200개 이상 | 비오코프 등 대형 무포장 프랜차이즈 등장, 무포장 세제 정기구독 서비스 확산 |
영국 | 약 150개 이상 | 지역 커뮤니티 단위로 리필 스테이션 확대, 생산단계 규제 강화 시도 |
대한민국 | 약 70개 이상 | 더피커 등 소규모 매장 중심, 대형 유통업체의 시범사업 확대, 지자체 지원책 미비 |
일본 | 약 40개 이상 | 작은 편집숍 형태로 시작, 도시 지역 중심 확산, 지자체별 환경 조례 개정 검토 |
(출처: 환경부, 통계청, 각 국가 환경부서 정책 자료 종합)
표에서 보듯,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제로웨이스트 매장 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제품 생산-포장-유통 전 과정에서 친환경 설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늘고 있어, 향후 성장 가능성은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ESG 경영이 보편화되면서 투자 유치에 있어 ‘환경친화성’을 중요한 척도로 삼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맞물려 제로웨이스트가 더욱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제로웨이스트 적용 사례: 더피커와 생활기술의 중요성
국내 제로웨이스트 매장의 효시로 언급되는 ‘더피커(The Picker)’의 사례는 사회적·문화적 시사점이 큽니다. 이곳은 대나무 칫솔, 고체치약, 천연수세미 등 재활용이 용이하거나 생분해 가능한 소재의 생활용품을 주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제품 포장을 최소화해 실제 매장을 방문하는 소비자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편의를 극대화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가 생기며, 결과적으로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버려질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더피커가 흥미로운 점은, 이 매장의 설립 목적이 단순히 ‘친환경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로웨이스트라는 사회적 개념을 확산”시키는 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더피커 대표 송경호 씨는 “무포장은 제로웨이스트 요소 중 하나일 뿐, 궁극적으로 생산-소비-폐기 전 단계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제로웨이스트는 무포장만을 의미한다”는 대중적 오해를 해소하면서, 생산단계에서도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과 정책을 함께 고민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더불어 더피커는 ‘자급자족 클래스’를 운영해, 일반 시민들이 세제나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옷 수선이나 요리 같은 기초 생활기술을 익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과거 할머니·어머니 세대에는 당연한 일이었던 ‘수선해서 쓰기’, ‘직접 요리해 먹기’가 어느 순간 대량소비 체제 속에서 잊혀져갔는데, 이를 다시 일상에 되살리는 과정을 통해 쓰레기의 총량을 줄인다는 발상입니다. 이는 “불편함을 당연시했던 과거의 삶”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소비문화를 의도적으로 통제해 환경적·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피커는 기업 자문 및 컨설팅을 통해 기업들이 생산단계에서부터 ‘제로웨이스트 설계’를 접목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예컨대 제품 소재로 재활용이 쉬운 알루미늄이나 종이를 선택하고, 포장박스의 잉크 사용량을 줄이며, 배송 과정에서 재사용 가능한 포장재를 활용하는 식입니다. 결국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상호작용해야 제로웨이스트가 사회 전반에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더피커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 교훈입니다.
제로웨이스트의 한계와 지속가능한 미래 전망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제도적·정책적 지원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특히 무포장 혹은 재사용 포장재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증가하거나, 적절한 인프라가 미비해 소비자의 동선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친환경 설계와 포장재 교체에 따른 초기 투자비가 상당히 커, 정부나 지자체가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대중화가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제로웨이스트에 내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자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첫째, 정부 차원에서 무포장 제품, 재활용 소재 사용 등에 대해 세액 공제나 보조금을 확대하고, 제로웨이스트 매장과의 협업 모델을 발굴·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기업은 ESG 경영이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장기적 이윤 극대화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한 친환경 프로세스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합니다. 셋째, 소비자도 적정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소비습관을 재점검하는 태도가 요구됩니다.
미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최근 MZ세대를 필두로 한 ‘사회적 책임소비’ 확산입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자료(2024년 발간 보고서 기준)에 따르면, 2030년까지 친환경 제품과 서비스 시장이 매년 10% 안팎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소비자 인식 변화가 가장 큰 동력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실제 20·30대 사이에서 리필 스테이션, 중고거래, 업사이클링 제품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가치소비는 전 연령층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장기적으로,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매장’ 자체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즉,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애초에 쓰레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체계로 생산·유통·소비되는 환경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소비자의 인식 변화를 넘어 정책·법 제도,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선행되어야 하며, “제로웨이스트”라는 슬로건이 사회 전 부문에 내재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지향점은 ‘지속가능성’ 그 자체이지만, 그것이 단시간 내 실현되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피커를 비롯한 다양한 사례가 보여주듯이, 소비문화 자체에 대한 전환이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결론 및 키워드
제로웨이스트는 과대포장과 일회용품 남용이라는 폐기물 문제에 대한 직접적 해법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가 ‘책임소비’를 습관화하고, 이를 통해 환경 및 자원 문제를 해결하며, 더 나아가선 기업의 생산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변혁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서울 성수동의 작은 매장으로 시작한 더피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로웨이스트가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불편해 보이지만 더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길일 수 있습니다. 개인은 작은 실천으로 출발하되, 기업과 정부 역시 제도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협력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제로웨이스트는 현실에 뿌리내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