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필스테이션의 등장 배경과 의의

리필스테이션

리필스테이션은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고 친환경 소비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된 대표적인 ESG 경영 사례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샴푸·바디워시·세탁용품 등과 같은 생활 필수품을 포장 용기 없이 내용물만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소비자가 직접 전용용기나 개인용기를 가져와 필요한 양만큼 상품을 구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플라스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2020년 이후, 국내 대기업들은 사회적 책임과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리필스테이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제로웨이스트”라는 키워드를 대중에게 알리고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려는 흐름과 맞물려 주목을 받았다.

당시 환경부( 출처: 환경부 )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그리고 여러 대기업이 협업하여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 일상적인 생활권에 리필스테이션을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소비자가 손쉽게 친환경 생활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연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의의가 있었다. 특히 대형마트의 사례로는 이마트가 가장 먼저 움직여 ‘에코 리필스테이션’을 내놓았고, 화장품 업계에서는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이 참여했다. 편의점도 GS리테일이 시범 운영에 나서는 등 소매 유통 전반에 걸쳐 리필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초기 기대와 달리, 2023년~2024년 현재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대기업 리필스테이션이 시범 수준에서 멈추거나 철수 단계에 접어든 실정이다. 이처럼 단발성으로 그칠 위험성이 높아진 배경은 여러 요인과 맞물려 있다. 대표적으로 기업 측면에서는 설치·운영 비용 대비 낮은 수요를 꼽을 수 있다. 기기 도입, 전용 용기 제작, 매장 공간 확보 등에 투입되는 비용이 상당하지만, 매장 운영 성과가 미진하다는 분석이다. 반면 소비자 측면에서는 리필 매장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애초에 시범 매장이 너무 적어 실질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바로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까지의 리필스테이션 운영 실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제도적·경제적·심리적 측면의 복합 요인으로 인해 빠르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화장품법을 비롯한 소분 판매 관련 규제가 인력 및 운영 구조를 제한한다. 경제적 측면으로는 설치비와 유지비에 대한 부담이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작용한다. 또한 심리적 관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일회용품 사용에 익숙해진 소비 패턴이 쉽게 바뀌지 않아, “앞으로 리필스테이션이 더 많은 주목을 받으려면 해당 문화를 일상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과 제도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렇듯 리필스테이션은 한때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으나, 현재는 투자 대비 효과가 저조하다는 평가와 함께 존폐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플라스틱 문제와 탄소 저감 노력이 전 지구적 과제로 자리 잡은 만큼, 이 흐름이 단순히 ‘유행’에서 그칠 사안은 아니다. 저성장을 넘어 다시금 확산으로 이어질 열쇠는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기업의 장기적 비즈니스 전략,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에 달려 있다. 각 주체가 효율적으로 협업한다면 리필스테이션은 앞으로도 ‘사회 분야에서의 ESG 모범 사례’로 충분히 재조명될 가능성이 높다.


확산 둔화의 배경: 제도적 장벽과 기업 전략

리필스테이션이 활발히 운영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찾으려면, 먼저 화장품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에서 비롯되는 제도적 장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장품 소분 판매의 경우,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를 반드시 상주시키거나 해당 인력이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별도의 인력 고용과 교육, 혹은 자격증을 보유한 인력을 구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보건복지인재원에 따르면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자격시험의 회차당 평균 합격률은 19.6%가량에 불과하다. 자격 취득 문턱이 높은 편이며, 이로 인해 시장 수요에 비해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화장품 리필매장을 운영하는 기업에 한해 일정 기간 동안 조제관리사 부재를 허용하는 실증 특례를 부여했다. 당시에는 알맹상점, 이니스프리 등 두 기업이 선정되어 총 6개 리필매장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고, 실증 기간은 2022년 1월부터 2024년 1월까지로 설정되었다. 목적은 “조제관리사가 없는 매장이 실제로 소비자 안전과 위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객관적으로 비교해보겠다는 것이었지만, 시범 매장 중 일부가 수익성 문제로 사업을 종료하면서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데이터가 온전히 축적되지 못한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기업의 중장기 전략 부재다. ESG 경영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단기적인 실적 분석을 통해 ‘운영 철수’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는 각 기업이 리필스테이션을 “기업 이미지 제고” 정도로만 인식하고, 시장 수요가 예상보다 낮으면 곧바로 철수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편의점 업계의 경우 편의점 특성상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작 시범 운영 결과 기기 설치 공간 대비 수요가 저조해 사업을 철수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최근(2024년 기준) 국회에는 이러한 제도적 장벽을 완화하기 위한 화장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상정된 상태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를 대체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이수한 인력을 매장에 배치하면 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한화장품협회는 이 제안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내비치고 있으며, 반면에 자격증 취득자의 권리 침해 및 제도의 안정적 정착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까지 법 개정이 완료된 것은 아니므로,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앞서 사회적 합의와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업들 역시 ESG 경영을 펼치는 과정에서 리필스테이션 같은 사업을 어떻게 장기적 관점으로 이끌어갈지 고민 중이다.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은 기존 리필스테이션을 접는 대신, 리필형 제품이나 리플레이스 제품(내용물을 교체하는 방식)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는 생산부터 유통, 그리고 소비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오프라인 리필 매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자체 지원 현황과 최신 동향

대기업 주도의 리필스테이션이 축소 혹은 폐지 수순을 밟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형태의 리필 매장 지원 정책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2024년 들어 ‘제로웨이스트 상점 활성화’ 정책을 한층 더 강화했다. 서울시는 제로웨이스트 제품 개발 기업과 소분·리필스테이션 등 친환경 가게를 모집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 중인데, 한 해 총 250개소를 선정하여 약 600만원(제품 개발 기업 기준) 혹은 190~250만원(매장 운영) 정도의 보조금을 일시 지급한다( 출처: 서울시 제로웨이스트 지원사업 ). 이는 리필스테이션과 같은 친환경 사업자가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일찍 철수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이처럼 지자체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환경정책과 연결된 사회적 편익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볼 수 있다. 많은 시민이 리필 문화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실제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초기 운영비용 보조”가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다. 실제로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리필 매장은 장소 임대료, 기기 도입비, 인건비 등 고정비가 부담되는 편이다. 반면 대기업이 철수하거나 시범 매장을 최소화함에 따라, 현재 시장에는 소규모 리필 전문점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자체 차원 지원만으로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편의성을 담보할 인프라가 충분치 않고, 매장 간 일관된 기준(예: 충전 방식, 안전 위생 가이드라인 등)이 부재해 혼란을 겪는 사례도 나타난다. 예컨대 어떤 매장은 무게를 기준으로 요금을 부과하고, 다른 매장은 부피를 기준으로 책정하면서 소비자들이 혼선을 겪는 식이다. 게다가 화장품 소분 규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 단순 세탁세제나 주방세제 정도를 제외하면 제품 종류가 제한되는 경우도 흔하다.

일부 전문점과 협동조합은 리필 문화를 확대하기 위해 각종 캠페인과 워크숍을 개최해 시민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더불어 ‘탄소중립포인트제’와 같은 제도도 활용된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탄소중립포인트제에서는 리필 매장 이용 시 건당 2,000원 정도를 환급해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여전히 가맹점 수가 적어 실제 혜택을 체감하는 소비자가 드물다는 점이다.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리필스테이션 망이 구축되어야만 실질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유럽이나 북미 일부 지역에서는 법·제도·인프라의 3박자가 맞물려 리필 문화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컨대 일부 지역에서는 판매자에게 소분 판매 허가를 받기 쉽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소비자도 손쉽게 재사용 용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보조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 기업 또한 초기 비용 부담이 줄어들어 장기적 투자를 고려해볼 유인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 지원 정책을 더욱 확대하고, 기업과 시민단체가 함께 협업 모델을 구축해 제도적·인프라적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향후 과제와 발전 가능성

리필스테이션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소비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소비자 참여, 기업의 장기 전략’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통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먼저 제도 개선 측면에서는 화장품 소분 규제 완화를 포함해, 리필스테이션 운영에 필요한 위생·안전 기준을 합리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상정된 화장품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대체 인력 운영이 가능해져 매장 운영 인력 확보에 유리해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안전 관리가 필수인 화장품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전문성 확보와 관리·감독 방안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소비자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는 접근성, 편의성, 경제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처럼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장소에서 리필스테이션을 경험할 기회가 많아져야 하고, 전용 용기 구매나 세척에 대한 번거로움도 최소화해야 한다. 더불어 탄소중립포인트제 같은 혜택을 보다 널리 알리고, 이용이 편리하도록 모바일 서비스 연계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정기적인 리필데이”를 운영하거나, 리필 봉사단 및 안내 인력을 두어 신규 이용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식도 검토해볼 만하다.

기업의 장기 전략은 단순한 이미지 마케팅을 넘어 실제로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일부 화장품 제조사는 리필러블 제품과 리플레이스 제품 라인을 늘리고, 제품 제작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거나 무(無)플라스틱 패키지를 시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ESG 투자 흐름이 국내외 시장에서 확대되고 있어, ‘지속가능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는 기업에는 금융·투자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따를 수 있다.

다음은 현재 국내 리필스테이션 관련 주요 지표를 간단히 정리한 표다.

구분내용
제도적 환경• 화장품 소분 시 조제관리사 의무 (일부 샌드박스 적용 중)
• 화장품법 개정안 국회 상정 (2024년 기준, 아직 통과 전)
운영 주체• 대기업: 이마트,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대부분 철수 or 시범 운영 종료)
• 지자체 & 중소업체: 서울시 등 보조금 지원, 소규모 전문점 운영
인프라 현황• 대도시 소수 점포 집중, 지방은 극히 제한적
• 시범 매장 줄어 소비자 접근성 낮아짐
소비자 혜택• 탄소중립포인트제 (리필 이용 시 2,000원 환급 등)
• 지자체 보조금(매장 운영비, 환경개선비 등)
향후 전망• 제도 완화 시 소분 매장 확대 기대
• ESG 투자 확대에 따른 기업 참여 가능성 재조명

앞으로 사회적 합의와 정부 및 지자체 지원, 기업의 적극적인 재투자가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면 리필스테이션을 통한 ‘일상 속 환경운동’이 더욱 폭넓게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 각 주체가 단발적인 이벤트성 참여가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의 ESG 경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하여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리필스테이션은 미래 사회에서 중요한 친환경 소비 인프라로 자리매김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자원 고갈 문제 속에서 리필스테이션은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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