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제로웨이스트와 마을 공동체의 만남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을 거닐다 보면, 눈길을 끄는 분홍색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유어보틀위크(YOUR BOTTLE WEEK)’를 알리는 홍보물로, 포장재를 줄이거나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활용해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행사다. 그러나 단순히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취지를 넘어, 연희동이라는 마을 공간에 녹아든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사람과 공간을 잇고 있다.

유어보틀위크는 지난 6년간 시민들이 개인 용기를 직접 지참해 생활용품, 음료, 식료품 등을 ‘담는’ 문화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1회용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일종의 ‘낯선 불편함’을 경험케 함으로써, 소비 과정에서 불필요한 포장을 제거하고 재사용 용기를 쓰는 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 결과, 매해 행사 참여자와 제휴 매장 수가 증가해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알리는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 행사 주제는 ‘살고 싶은 마을’이다. 즉, 개인의 환경 보호 의지를 넘어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머무는 동네가 어떤 공간이어야 지속가능하고, 서로에게 든든한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겠다는 취지다. 올해는 연희동 일대 곳곳을 ‘마을회관’ 형태로 꾸며, 지나가는 주민과 방문객들이 유어보틀위크 정신을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보틀라운지’는 술집, 아이스크림가게, 용기 대여소, 책·옷 교환 장터 등 다채로운 형태로 변신해, 동네 안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선보이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전문 단체인 보틀팩토리 측은 “마을회관이라는 개념을 재해석해, 이웃을 만나고 공동의 정보를 나누며 ‘같이 사는 방식’을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 아이템을 소개하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환경과 삶의 질을 고민하는 참여형 공간을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최근 환경부 통계(2024년 기준)에 따르면, 생활폐기물 중 상당 부분은 포장재나 일회용품이다. 이에 대한 시민 의식을 전환하는 데 유어보틀위크 같은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앞으로의 추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보틀클럽’ 애플리케이션과 보틀(포인트) 구조

유어보틀위크가 단순 오프라인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플랫폼과 연동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주최 측인 보틀팩토리는 ‘보틀클럽’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참여자가 다회용 컵이나 용기를 사용하거나, 비건 메뉴를 선택하는 등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할 때마다 포인트(‘보틀’)를 적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포인트는 개인이 가꾸어 나가는 ‘나무’ 형태로 시각화되어, 작은 실천마다 나무가 자라고 꽃과 열매를 맺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게임화(Gamification) 요소는 환경운동이 자칫 지루하거나 ‘개인 희생’으로만 비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한다. 앱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매장에서 텀블러를 사용하거나 플라스틱 빨대를 거절하는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재미있는 리워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적립된 보틀 포인트는 탄소중립포인트로 전환 가능해, 실제 친환경 소비를 인증받는 또 다른 보상 체계까지 제공한다.

아울러 제휴 중인 매장도 늘어나고 있다. △다회용컵 사용 △다회용기 지참 △리필 용기 사용 △비건 메뉴 선택 등 해당 매장이 제공하는 ‘제로웨이스트 실천’ 항목을 충족하면 보틀클럽 앱에서 포인트가 누적되는 식이다. 2024년 현재 기준, 연희동과 인근 서대문구 일대에만 20곳 이상의 카페·식당·베이커리가 참여 중이며, 매해 참여 업체 수가 증가하고 있다.

아래 표는 보틀클럽 애플리케이션의 주요 기능과 연계되는 제로웨이스트 활동 유형을 가상의 예시 데이터와 함께 정리한 것이다.

제로웨이스트 활동 유형예시 실천보틀 적립 점수(예시)주요 효과
다회용컵텀블러 지참 후 음료 구매+10 보틀일회용 컵 사용 절감, 쓰레기 배출량 감소
다회용기음식 포장 시 개인 용기 사용+15 보틀일회용 포장재 절감, 플라스틱 저감 효과
리필용기세제·식재료 등을 용기에 리필 구매+20 보틀과잉 포장 폐기물 감소, 자원 활용성 높임
거절하기플라스틱 빨대·포크 등 거절+5 보틀생활 속 사소한 습관 개선으로 쓰레기 감축
비건한끼식당에서 비건 메뉴 주문+10 보틀축산업 탄소발자국 감소, 건강한 식습관 장려
자원순환재활용품 분리배출 인증(사진 첨부 등)+8 보틀재활용률 제고, 환경 인식 제고

(출처: 보틀팩토리 발표 자료, 일부 가상의 수치 포함)

이처럼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개인별 실천을 쉽고 재미있게 관리하면, 결과적으로 지역상권과의 협업도 활발해진다. 매장 측은 친환경 이미지를 높이고, 소비자는 포인트 적립과 함께 환경 기여도를 실감할 수 있는 윈윈 모델이 형성된다.


‘마을회관’ 컨셉의 보틀라운지: 축제 속 공동체 실험

올해 유어보틀위크에서는 연희동의 ‘보틀라운지’를 마을회관이라는 콘셉트로 전면 변신시켰다. 행사를 주최·주관한 보틀팩토리 측은 “마을회관은 주민들이 오며가며 이웃을 만나고, 공동의 정보를 얻고, 나눌 것을 찾고, 때로는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밝힌다.

실제로 이번 행사 기간 중 보틀라운지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열렸다. △질문이 있는 술집: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대화의 장, △버릴 것 없는 채소가게: 채소 부산물을 활용한 요리나 식재료 활용법 공유, △제로웨이스트 아이스크림가게: 일회용 포장이 없는 아이스크림 판매, △용기 대여소: 필요한 용기를 빌려가서 사용 후 다시 반납, △교환 책장·교환 옷장: 필요 없는 책·옷을 서로 바꿔 쓰는 장터, △작은 공연과 마을 장터 등, ‘환경’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주민들이 교류하고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다양하게 준비되었다.

주목할 점은, 행사장 내에서 보틀클럽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기존에 적립했던 포인트를 사용하거나 기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포인트를 사용해 간단한 음료를 마시거나, 교환 옷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일부 프로그램은 포인트 기부 형태로 참여비를 대체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경제활동’의 일부가 보틀 포인트로 대체되는 구조는, 지역커뮤니티 안에서 재화·서비스가 순환되는 새로운 모델로 해석될 수 있다.

사회학자들은 “공동체 의식을 높이려면, 사람들에게 ‘함께 할 수 있는 공간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유어보틀위크가 제시한 마을회관 컨셉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기존에 제로웨이스트 활동이 개인 차원의 실천으로만 그쳤다면, 이제는 장소와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어가는 상호작용의 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연희동 일대, 마을 가게와의 협업 효과

유어보틀위크 행사는 연희동 일대의 많은 가게와 협업한다. 예를 들어 △식당·바(베지스, 다정한 마음, 산스, 위어도우, 잇찌, TITCH, 완숙), △디저트·베이커리(지벨, 해브어밀, 버드스틱), △카페(보틀라운지, 롯지 190, 까페여름, 카페 샘, 미크 커피, 카페 이웃), △식자재(경성참기름) 등이 일주일간 제로웨이스트 실천 행동을 장려한다. 구체적으로 개인 용기를 지참하면 할인 혜택을 주거나,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 사용을 독려하고, 음식물 포장 시 불필요한 포장재를 거절하는 등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상권 참여 모델은 소비자와 상점 사이의 시너지를 창출한다. 상점은 친환경 이미지를 통해 새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는 환경 보호를 실천한다는 만족감을 얻으면서도 보틀포인트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202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음식점·카페에서 일회용 식기·포장을 줄이면 평균 10%가량의 쓰레기 처리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지역 상인들이 제로웨이스트에 참여하는 동기 또한 단순한 ‘착한 일’이 아니라, 실질적 비용 절감과 마케팅 장점을 동시에 갖는 셈이다.

다만, 제로웨이스트를 처음 시도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재사용 용기를 준비하는 게 번거롭고, 매장에 따라 규정이 달라 헷갈린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행사 관계자는 “유어보틀위크는 일 년에 한 번씩 집중적으로 열리는 만큼, 그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도록 제안하고 있다”며, “작은 시작이 모여서 일상화로 이어지는 것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지속가능한 ‘보틀 순환 구조’를 향해

결국 유어보틀위크의 핵심은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단발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지역 내에서도 지속가능한 구조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매년 행사 때마다 일시적으로 인기를 끌다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보틀클럽 애플리케이션과 마을회관형 공간 운영을 통해 “이 동네에서는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는 문화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도시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서울시 각 자치구는 주민 주도의 제로웨이스트숍, 리필스테이션, 생활폐기물 분리배출 캠페인 등을 적극 지원하는 추세다. 예컨대 일부 구에서는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제로웨이스트 프로그램을 유치·확대하고, 참여 매장에 설비·홍보비를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외에서도 제로웨이스트를 넘어, 용기를 순환시키고 포인트로 보상받는 플랫폼 모델이 늘어나는 추세다.

무엇보다 ‘나무를 가꾸는’ 보틀클럽의 개념은 개인의 환경 행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장기적으로는 탄소중립포인트를 포함한 사회적 보상체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자 경험(UX)을 개선하고, 더 많은 동네와 업체가 참여하게 될지가 관건이다. 행사 측은 “올해 연희동 사례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인근 지역이나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모델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유어보틀위크라는 계기를 통해 일상 속 작은 변화를 맛볼 수 있다. “다회용기 한 번 쓰는 게 정말 큰 차이를 만들까?”라는 회의도, 일주일의 집중 실천이 거듭되면 점차 긍정으로 바뀔 수 있다. 미래 환경을 책임질 도시문화가, 이렇게 골목과 마을회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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