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제로웨이스트와 비 존슨의 철학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노트북, 휴대전화, 가구, 생활용품 상당수가 플라스틱으로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가능하다”는 답변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Zero Waste Home)』의 저자이자, 제로웨이스트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비 존슨(Bea Johnson)**이다.
비 존슨은 10년 이상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지속하며,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았다. 5월 25일에는 한국을 방문해, ‘쓰레기 없는 삶’에 대한 강연과 기자회견을 통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다양한 실천법을 소개했다. 그녀가 제안하는 핵심 메시지는,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지속 가능하게 실천하면, 결국 편의성과 환경보호, 경제적 이득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 존슨은 가정 내 생활용품을 최소화하고 재사용 가능한 제품 위주로 전환함으로써, 예상외의 편리함과 비용 절감 효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개념은 단순히 쓰레기를 ‘0’으로 만들자는 극단적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자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국내외 다양한 환경단체와 시민 모임, 스타트업 등이 이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배달 음식, 쇼핑, 세면도구, 청소용품 등 일상 속 쓰레기 발생 원인을 단계별로 줄여 나가는 움직임을 활성화하고 있다.
2. 5R 원칙과 지속 가능한 실천: 비 존슨의 핵심 노하우
비 존슨이 제시하는 대표적인 원칙은 ‘5R’이다. 이는 거절(Refuse), 줄이기(Reduce),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 그리고 썩히기(Rot)를 순서대로 실천함으로써 쓰레기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 때 주목할 점은, “거절하기(Refuse)”와 “줄이기(Reduce)” 단계에서 이미 대부분의 쓰레기 발생이 사전에 차단된다는 사실이다.
- Refuse(거절하기)
불필요한 프로모션 물품, 일회용 빨대, 포장재 등을 적극적으로 거절하는 단계다. 예컨대 커피 주문 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수저·포크가 필요 없다”는 옵션을 배달 앱에서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양의 쓰레기를 막아낼 수 있다. - Reduce(줄이기)
이미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판단된 물품이나 자원을 사용하는 양을 최소화한다. 대표적으로 부엌에서 과도한 포장을 동반한 식재료 구매를 줄이고, 필요한 만큼만 음식물을 조리해 음식물쓰레기도 최소화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 Reuse(재사용하기)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라, 여러 번 쓸 수 있는 다회용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비 존슨은 샴푸, 바디워시, 세제 등도 리필 스테이션이나 리필형 용기로 바꿔 쓰면서 재사용 습관을 생활 전반에 도입했다. - Recycle(재활용하기)
다회용 제품으로 대체가 어려운 품목이라면, 최대한 분리배출을 철저히 해 재활용 가능성을 높인다. 플라스틱 종류별로 구분하고, 유리나 종이는 다른 쓰레기와 섞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수다. - Rot(썩히기)
음식물 찌꺼기 등은 퇴비화 과정을 통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단계를 의미한다. 이는 화학적 처리 대신 미생물 분해와 같은 자연적 과정에 의존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폐기되는 양을 극소화한다.
비 존슨이 강조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Less waste”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한 제로웨이스트 실천가가 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그런 강박이 지속가능성을 해칠 수도 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옷을 포기하기보다는, 부엌 용품부터 정리해 보는 식으로 접근 가능하다. ‘쉽게 비울 수 있는 곳’부터 차근차근 줄여 나가면, 자연스럽게 라이프스타일 전체가 조금씩 변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제로웨이스트는 장기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 개인이 스스로 균형을 찾는 과정을 지향한다.
3.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실태와 기업·소비자의 역할
일회용 플라스틱을 둘러싼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실천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왜냐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플라스틱 생산량과 폐기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대 연간 약 200만 톤 수준에서 2023년 기준 약 4억 톤을 넘어섰으며, 이 중 상당수는 일회용 포장재나 용기로 쓰이고 폐기되는 실정이다.
아래 표는 2024년 추정치를 기반으로, 주요 지역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추세와 규제 동향을 요약한 것이다.
구분 | 연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억 톤) | 규제/정책 동향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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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0.50 | 일부 주(州)의 비닐봉투 금지, 플라스틱 빨대 제한 | 미국 환경보호청(EPA) |
EU 전체 | 0.40 | 일회용 플라스틱 지양법 시행, 특정 품목 금지(플라스틱 빨대 등) | 유럽환경청(EEA) |
중국 | 0.70 | 비닐봉투 규제 강화, 환경세 도입 검토 | 중국 생태환경부 (http://english.mee.gov.cn) |
한국 | 0.10 |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편의점 비닐봉투 유료화 | 환경부 (http://www.me.go.kr) |
기타 아시아 | 0.30 | 국가별 편차 크지만, 도시 지역 중심으로 규제 확대 움직임 | UNEP, 지역별 보고서 |
(표) 주요 지역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 및 규제 현황 (2024년 추정치)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각 국가와 지역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회용 플라스틱을 규제하고 있으며, “플라스틱 제로(Plastic Zero)” 캠페인 등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글로벌 생산량 자체가 워낙 많다 보니, 기업 측에서 일회용 포장재를 적극적으로 대체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 변화를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점에서 비 존슨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소비자가 곧 투표권을 쥔 유권자”라는 것이다. 개인이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거부하고, 친환경적으로 재설계된 상품을 꾸준히 구매하면, 기업은 시장 요구에 맞춰 생산 방식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미 펩시콜라, 유니레버, P&G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재사용 용기를 도입하거나, 칫솔 헤드 교체형 제품 등을 출시하기 시작한 것이 그 예다.
4. 제로웨이스트,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울까?
“가족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우려는 제로웨이스트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이 흔히 갖는 고민이다. 실제로 비 존슨도 샴푸 대신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사용하는 ‘노푸(No Shampoo)’ 운동에 참여했다가, 가족의 불만과 본인의 생활 패턴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절충안을 찾았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맹목적인 고집보다는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처럼 제로웨이스트 삶이 곧 고행(苦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써도 되는 물건과 쓰지 않아도 되는 물건을 명확히 구분하면, “생활용품의 종류와 수가 크게 줄어든다”는 이점을 체감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세제가 필요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식초와 베이킹소다만으로 집안 청소가 가능하다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일회용 포장재 없이 벌크(bulk) 형태로 구매하는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적극 활용하면, 장기적으로 생활비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제로웨이스트 샵’이나 ‘리필 스테이션’이 확산되면서, 무포장 식재료나 친환경 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경로가 늘어나고 있다. 그린피스가 202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부산·제주 등 도시 지역에 무포장 상점이 2년 전 대비 약 1.5배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가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 나아가 친환경 시장 자체를 성장시키는 선순환 효과를 일으킨다.
5.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미래: 긍정적 변화와 전망
비 존슨은 자신이 10년간 걸어온 “쓰레기 없는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전 세계가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고 자원을 절약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 낙관한다. 이미 많은 국가가 탄소중립이나 순환경제 전략을 세우면서, 일회용품 규제와 재활용 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기업과 정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압박하는 데에는 결국 소비자의 선택이 핵심 동력이 된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된다.
- 기업 차원: 다회용 용기, 리필형 제품 등 신규 시장 창출
- 정부·지자체 차원: 일회용품 보증금 제도, 생분해 소재 지원책, 분리배출 인프라 확충 등
- 소비자 차원: 일회용 포장재 사용 거절, 무포장 가게 이용, 환경캠페인 참여 등
앞으로의 과제는 “누구나 쉽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유일한 대안이 일회용 플라스틱이라면,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실천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리필 스테이션 확충, 다회용기 회수 시스템 정착, 기업의 친환경 제품 개발 확대 등이 함께 이뤄져야만 한다.
결국 비 존슨의 사례는 “개인의 작은 실천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그것이 기업과 사회, 나아가 세계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쓰레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편리함 일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 대가로 얻는 경제적·환경적·심리적 이점은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