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쓰레기 없는 식당, 어디까지 가능할까
세계 식당 외식업계에서 빠르게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다. 간단히 말해, 음식 재료가 조리 과정을 거쳐 손님 테이블에 오르기까지 어떠한 쓰레기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불가능해 보일 수 있지만, 이미 영국의 ‘사일로(Silo)’, 독일 베를린의 ‘프레아(Frea)’, 미국 워싱턴의 ‘시아(SHIA)’ 등 다양한 레스토랑이 쓰레기통 없는 식당을 표방하며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버려진 빵 껍질을 후식으로 재활용하거나, 채소의 뿌리와 껍질을 소스나 양념으로 만들어 내는 형태로 나타난다. 로컬 농가에서 공급받은 식자재를 남김없이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도 일회용 포장재를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생산-유통-소비 전체 단계에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유독성 폐기물이 될 음식물을 퇴비로 만들어 농부에게 다시 돌려주는 식으로 순환 체계를 구축해, 사실상 음식물 쓰레기 제로(0%)를 노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친환경 식당’이 단순히 환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손님에게 ‘낭비 없이도 미식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맛과 창의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데 집중한다. 베를린의 ‘프레아’가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자 100% 비건 메뉴를 제공하면서도, 완벽한 미식 체험을 선사해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음식 재료와 식자재, 인테리어에까지 신선한 아이디어를 접목해 ‘쓰레기 없는 레스토랑’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은, 기후위기 시대에 상당히 시의적절하다. 실제로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가 2023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생산된 식품의 약 30%가량이 유통·소비 과정에서 버려지며, 그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항공 분야의 배출량을 훌쩍 넘긴다고 한다. 이 와중에 ‘제로 웨이스트’를 내건 식당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2. 대표 사례로 보는 ‘쓰레기통 없는 식당’의 실제
“쓰레기는 상상력의 실패”라는 말로 화제가 된 영국 런던의 **‘사일로(Silo)’**를 살펴보자. 이곳의 셰프 더글러스 맥마스터는 재료 손질 과정에서 나오는 버려진 부분조차도 새로운 요리 아이템으로 탈바꿈시킨다. 예컨대 굳은 빵 껍질은 식사 후 디저트로, 손님에게 바로 내기 어려운 채소 껍질은 육수나 소스의 재료가 된다. 또 남은 음식물을 퇴비로 만들거나 발효시켜 다른 요리에 재활용함으로써, 식당 안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사실상 제로에 가깝게 줄였다.
비단 음식만이 아니다. 가구나 식기류도 ‘업사이클링’ 소재를 적극 활용한다. 사일로의 바닥재는 재활용 코르크로 만들고, 테이블은 버려진 과자봉지를 압착해 화려한 무늬를 입혔다. 와인병을 잘라 만든 접시 등, 눈에 띄는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이렇듯 일상에서 흔히 버려지는 요소에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하여, 손님들에게도 “버려지는 것에도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독일 베를린의 **‘프레아(Frea)’**는 여기에 100% 비건 메뉴라는 요소를 더했다. 육류가 아닌 식물성 식재료만 사용해 채식 문화를 지향함으로써, 동물성 식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온실가스와 자원 낭비를 줄인다. 또한 한쪽 구역에 퇴비 기계를 마련해, 손님들이 남긴 음식물을 즉시 비료로 전환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료는 다시 주변 농가로 돌아가 다음 작물을 키우는 데 사용되며, 식당-농가-소비자를 잇는 순환 경제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시아(SHIA)’**는 “No Gas, No Plastic, No Waste”라는 문구로 유명하다.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 조리를 택하고, 일회용 용기나 플라스틱 소모품을 아예 배제해 식당 운영 전반에서 ‘플라스틱 제로’를 실현하려고 시도한다. 가구나 직원 유니폼, 그리고 식자재 공급망에까지 ‘재생 소재·무플라스틱’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며, 단순히 비닐봉투를 안 쓴다든지 빨대를 없앤다든지 하는 정도를 훌쩍 넘어선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과거에 ‘이상적’으로만 여겨졌던 친환경 목표를, 실제 비즈니스로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 뒤에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따른다. 로컬 소싱을 통해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음식물 잔재를 퇴비화하는 데 필요한 시설 투자나 노하우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식당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3. 미식업계의 화두, ‘지속 가능성’과 소비자 인식 변화
오늘날 전 세계 외식업계가 맞닥뜨린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료 조달부터 남은 쓰레기의 처리까지 전 과정을 사회적·환경적으로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젊은 세대 소비자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한 소비 선택 기준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미국레스토랑협회(ARA)가 발표한 **‘2025 인기 요리 트렌드 전망(2025 What’s Hot Culinary Forecast)’**에 따르면, ‘지속 가능성’과 ‘로컬 소싱’을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이는 현재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가치 소비 트렌드, 즉 ‘내가 지불하는 돈이 사회와 환경에 어떤 긍정적 기여를 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외식업계에도 강력하게 반영된 결과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는 온실가스(특히 메탄) 배출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생산되는 음식물 중 약 3분의 1가량이 유통이나 소비 단계에서 폐기된다는 통계(FAO, 2023년 기준)는 충격적이다. 이는 항공 산업 전체보다 훨씬 큰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이어지는데, 서구 지역을 중심으로는 “비행기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친환경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물론 이중적인 현상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최근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환경친화적 소비를 이어가려는 젊은층이 늘면서, 외식업계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콘셉트로 승부하는 식당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낭비 없이도 훌륭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고객들의 충성도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펼친다.
4. 국내 시장 동향과 ‘제로 웨이스트 칵테일’의 부상
해외에 비해 다소 더딘 편이지만, 국내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흐름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쓰레기 양이 특히 많은 축에 속하는 칵테일 바나 카페 업계에서 이런 바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들은 간단한 일회용 빨대·컵 제거를 넘어, 칵테일 재료와 리큐르, 심지어 바 인테리어 요소까지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서울 청담동의 바 **‘제스트(ZEST)’**는 개업 때부터 ‘제로 웨이스트’를 전면에 내건 국내 첫 칵테일 바 중 하나다. 매장에서 발생하는 알루미늄 캔과 페트병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탄산수나 진저에일, 콜라, 토닉워터 같은 칵테일 베이스를 직접 만든다. 허브나 식용 꽃은 직접 농가에서 수확해 온 뒤, 남은 자투리 재료를 건조·침출·발효 같은 방식으로 재활용한다. 이러한 철학은 메뉴 구성에서도 드러나는데, ‘Z&T(진과 토닉)’같은 클래식 칵테일을 자체적으로 증류한 진으로 만든다거나, 도시 양봉가들에게서 공급받은 꿀로 만든 ‘시티 비즈니즈(City Bee’s Knees)’ 등을 선보여 친환경과 개성을 동시에 잡는다.
압구정동의 바 **‘파인앤코’**는 코로나19 시기 대량 폐기된 마스크 원단을 업사이클링해 독특한 코스터(컵받침)를 만들었는데, 이는 시그니처 칵테일 ‘바다(BADA)’와 함께 제공되어 고객들에게 “쓰레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 대표는 “이런 환경적 아이디어가 결국은 살아남기 위한 길”이라고 언급하며,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기후문제 악화로 인한 피해를 직접 체감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페르노리카 코리아 등 주류기업도 ‘지속 가능한 바텐딩’을 주제로 업계 종사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022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에는 국내 150개 업장, 550명 이상이 참가했으며, 재료 조달과 쓰레기 최소화, 책임 있는 음주 문화 등이 주요 논의 주제다. 전문가들은 “아직 국내에서는 법·제도적 한계로 인해 식재료 유통 과정에서 포장재 쓰레기가 상당량 발생하지만, 향후 지자체나 기업, 업계가 협력한다면 칵테일 바나 레스토랑이 에코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5. 음식물 쓰레기 감축과 친환경 비즈니스의 미래
음식물 쓰레기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를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FAO, 2023).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환경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식자재 생산·가공·운송에 투입된 자원과 에너지를 고려하면, 버려진 음식이 곧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버려질 음식을 싸게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애플리케이션 **‘투굿투고(Too Good To Go)’**는 2015년 덴마크에서 출발해 현재 미국·영국 등 17개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2024년 5월 기준으로 이용자가 약 780만 명에 달한다. 이는 음식점에게는 폐기 위기에 처한 식자재나 메뉴를 손실 없이 판매할 기회를 주고,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구입하는 이점을 제공한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를 낭비 아닌 자원으로 전환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례들은 미식업계에서도 친환경이 수익 창출과 결코 대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장기적으로 제로 웨이스트가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좀 더 광범위한 협업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로컬 소싱을 확대하려면 지역 농가와의 안정적 공급 계약이 필수적이고, 퇴비화 시설이나 재활용센터도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플라스틱 사용을 실질적으로 줄이려면 기업의 포장재 개선, 정부 차원의 규제나 인센티브 정책,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가 삼위일체로 어우러져야 한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 ‘쓰레기통 없는 식당’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더 많은 식당·카페·바가 비슷한 콘셉트를 도입하고, 소비자들도 “낭비 없는 미식 경험”을 표준으로 기대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이미 ‘제로 웨이스트’는 미식업계를 넘어 많은 산업에서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고, 이에 발맞춰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언젠가 이 모든 움직임이 합쳐져,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닌 “지구와 공존하는 방식”으로 거듭나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