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스틱 문제와 ‘알맹상점’의 시작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2024 서울공익활동 박람회’에서는 국내 최초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의 브랜드 토크가 진행되었다. 알맹상점 고금숙 대표는 ‘수리상점 곰손’ 활동도 병행하며, 플라스틱 문제 해결과 수리권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활동의 근저에는 플라스틱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미세플라스틱과 유해물질을 배출하며, 결코 쉽게 썩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인식이 깔려 있다.
환경부가 202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연간 약 7백만 톤 수준으로 추정되며 이 중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은 50% 내외에 그친다(출처: 환경부 공식 자료). 나머지는 소각되거나 매립돼 토양과 지하수 오염을 일으키고, 썩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지수가 높다는 메탄가스를 다량 배출한다. 고 대표가 “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지금 당장 줄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르게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는 이런 통계적 근거와 현실적 위기의식에 기반한다.
알맹상점은 망원시장 일대에서 장바구니 대여와 ‘알맹이 캠페인’을 시작으로, 자발적 참여 문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시장 내에서 비닐 대신 다회용 용기를 사용하거나, 용기에 세제를 리필하는 ‘벌크 판매’를 시도함으로써 전례가 드문 리필스테이션 운영을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비록 소규모지만 연간 수만 개 이상의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절감함으로써,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한층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시장의 도전과 소비자 동향
제로웨이스트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일회용품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재활용과 수리를 통해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문화를 지향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로웨이스트 시장 자체는 대중적 규모가 크지 않아, 가격 경쟁력이나 편의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예컨대, 알맹상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 화장품류이지만, 국내 화장품 리필 문화를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맞춤형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증 같은 제도적 장벽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환경 관련 시민단체에서 2024년 초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제 생활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23%에 불과했다(출처: 한국환경실천포럼 자체 조사). 주된 이유로는 ‘불편함’(52%), ‘추가 비용 부담’(26%), ‘관련 정보 부족’(15%) 등이 꼽혔다. 더욱이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찾아가야 하는 제로웨이스트숍 특성상,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슬로우 비즈니스’라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일부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텀블러·장바구니 사용 시 혜택을 제공하거나, 친환경 패키징 상품을 별도로 진열해 홍보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알맹상점의 활동은 이처럼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소비자의 제로웨이스트 수요를 충족하고, 나아가 기업과 제도를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자처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데이터로 본 리필스테이션과 소비자 인식 변화
알맹상점은 ‘벌크’ 형태로 주방세제나 화장품을 판매함으로써, 한 해 수만여 개 이상의 플라스틱 용기를 절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100리터 단위 세제를 리필 판매할 경우, 약 1리터 용기 100개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는 계산이다. 아래 표는 가상의 예시 데이터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 리필스테이션 수와 연평균 용기 절감량 추이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구분 |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추정) |
---|---|---|---|---|
국내 리필스테이션 수(개) | 30 | 50 | 80 | 110 |
연평균 용기 절감량(만 개) | 8 | 14 | 20 | 25 |
주요 품목(비율) | 세제(55%), 화장품(30%), 기타(15%) | 세제(50%), 화장품(35%), 기타(15%) | 세제(48%), 화장품(37%), 기타(15%) | 세제(45%), 화장품(40%), 기타(15%) |
소비자 인지도(%) | 15 | 22 | 28 | 35 |
(출처: 환경부·시민단체 추산, 일부 가상 수치 포함)
이 표에서 보듯, 리필스테이션은 2021년 이후 급증세를 보이고 있고, 화장품 분야 비율도 해마다 조금씩 상승 중이다. 소비자 인지도 또한 2021년 15%에서 2024년 35%(추정)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SNS와 언론을 통해 제로웨이스트 사례가 확산되고, 소비자들이 직접 매장에서 리필 문화를 경험하는 기회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리필스테이션 자체가 분명한 친환경 효과를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 전국 단위로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또한 화장품 리필처럼 법적·제도적 제한이 있는 품목의 경우, 관련 규제가 완화되거나 세분화된 지침이 마련되어야 저변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수리권 운동과 ‘수리상점 곰손’의 의의
제로웨이스트는 단순히 플라스틱 줄이기에 그치지 않는다. 물건을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한 ‘수리 문화’ 정착도 그 핵심 중 하나다. 알맹상점 고금숙 대표가 함께 운영하는 ‘수리상점 곰손’은 기후위기 시대에 ‘물건을 고쳐 쓰는 경험’을 장려하며, 일상 속에서 누구나 수리 기술을 배우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리상점 곰손에서는 배터리가 노후화된 전자기기를 교체·정비하거나, 찢어진 옷이나 고장 난 우산, 균열이 생긴 그릇 등을 손쉽게 고치는 방법을 워크숍 형태로 소개한다. 이러한 ‘수리권 운동’은 해외 일부 국가에서도 주목받고 있는데, 유럽연합(EU)은 2024년까지 전자제품 생산업체에 ‘수리 용이성 지표(Repairability Index)’를 의무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검토 중이다(출처: 유럽위원회 공식 발표). 이는 소비자가 구매 단계에서부터 제품의 수리 가능 여부를 인지하고, 더 오랜 기간 활용함으로써 폐기물 발생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국내에서도 재활용 센터나 공공 수리 공간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아직은 일반 소비자가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수리상점 곰손처럼 민간 차원의 자발적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물건을 직접 고쳐 쓰는 문화가 빠르게 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수리연합한국수리연합한국수리연합이 2023년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리 워크숍 참여 후 개인 수리 도구를 새롭게 구비했다는 응답자가 65%에 달했다. 이는 “조금만 배우면 스스로 물건을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소비자가 많아졌음을 시사한다.
제도·기업·개인의 협업으로 만들어가는 변화
고금숙 대표는 “대형마트에 용기 재사용품이 1~2종이라도 들어오고, 배달 앱이 일회용품 선택 옵션을 추가하며, 우유나 음료병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사라지는 등 작은 변화들이 모여 결국 기업과 제도를 바꾸게 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일회용품 없는 매일우유, 종이 용기로 바뀐 간식 제품, 스팸 뚜껑의 플라스틱 사용 감소는 모두 소비자와 환경단체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한 결과로 이루어진 사례다.
이렇듯 시민·기업·정부가 삼각 협력 관계를 이루면, 플라스틱 저감과 자원순환 문화가 더 효과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정부는 관련 규제와 인센티브를 정비해 리필스테이션과 수리 공간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기업은 소비자 피드백을 반영해 친환경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며, 개인은 일상에서 작은 실천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힘 있게 뒷받침할 수 있다.
알맹상점 역시 “잡화점이자 캠페인 공간”으로서 역할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로웨이스트를 넘어 수리권 운동까지 아우르며,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도시에 뿌리내리려는 시도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 없는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소비자와 기업이 이러한 행보에 동참해 각자의 일상과 제품 생산 과정을 다시금 점검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