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주간과 지구의 날: 한국의 탄소중립 노력

한국은 2009년부터 지구의 날(4월 22일)을 맞아 ‘기후변화주간’을 지정하고, 전국 소등행사·나무 심기·탄소중립 홍보 공연 등 다양한 캠페인을 펼쳐왔다. 이는 기업·지자체·시민단체·개인이 함께 참여하여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생활 속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실천을 독려하는 것이 목적이다. 2023년 말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출처: 환경부), 기후변화주간 행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거나 관심을 보인 시민 수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며, 특히 친환경 소비와 자원 절약, 분리배출 등 구체적인 행동 지침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목표를 공식 선언하면서, 기후변화주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태·환경 캠페인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 중 주목할 만한 활동이 바로 전국 규모의 ‘10분 소등행사’와 ‘생활 속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다. 몇 해 전부터 지자체들이 앞다퉈 건물 외벽 조명을 꺼 탄소 절감을 시민에게 체감하도록 하는 한편, 가정 내 ‘플러그 뽑기 운동’도 진행한다. 이러한 캠페인은 직접적 수치로 당장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인식을 전환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기후변화주간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고, 대중교통을 우선적으로 이용하며, 재생에너지를 도입한 전력 사용을 선택하는 등 시민들이 비교적 쉽게 시도할 수 있는 행동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중 하나가 바로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다. 불필요한 쓰레기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이고, 이미 생긴 자원을 최대한 재사용해 폐기되는 양을 최소화하는 제로웨이스트는 기후변화 대응과 자원 절약 모두에 긍정적 효과를 준다. 최근 유엔(UN)이 매년 3월 30일을 ‘세계 제로웨이스트의 날’로 지정(출처: UN News)한 것도, 국가와 개인이 함께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글로벌 공감대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로웨이스트의 개념과 글로벌 동향
‘제로웨이스트’는 말 그대로 ‘쓰레기 발생을 0(제로)에 가깝게 만든다’는 취지다. 예를 들어 분리배출 실천하기, 반찬을 덜어 먹어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은 누구나 일상에서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는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출처: WRI) “제로웨이스트 개념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정책으로 도입되면서, 가정과 기업에서의 쓰레기량이 연평균 5~10% 감소하는 경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배출량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산부터 유통, 소비까지 전 과정에서 환경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경제구조가 서서히 이동하는 데 기여한다.
글로벌 차원에서 제로웨이스트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는 유럽연합(EU)이다. EU는 포장재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강화하고, 업체들이 제품을 재활용 가능하게 설계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꾸준히 펼쳐왔다. 특히 2025년까지 플라스틱 일회용품의 90%를 회수·재활용한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회원국 간 협력을 통해 공동의 분리수거 표준을 마련했다. 미국 역시 대형 마트와 연계해 포장재를 대폭 줄인 ‘리필 스테이션(Refill Station)’을 확대하고 있으며, 다회용 컵 사용률을 높인 카페 브랜드와 협력하는 정책을 발 빠르게 추진 중이다.
제로웨이스트가 단순한 친환경 트렌드를 넘어 글로벌 지속가능성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는 배경에는, 최근 지속되는 환경 재난과 기후 이상현상이 크게 작용한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플라스틱 배달 용기, 일회용품 사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쓰레기 처리 시설의 과부하 문제가 대두되었고, 이는 쓰레기 감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해양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미세플라스틱 문제, 극심해진 폭우와 폭염 등 이상기후 사례가 잇따르면서 ‘더 늦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성장과 특징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국내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전국 곳곳에 생겨나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방문하는 것이다. 카카오맵에서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검색해보면 2025년 현재 약 300여 곳이 운영 중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상점은 쓰레기 없는 소비문화를 지향하며, 제품 생산·유통·판매 과정에서 불필요한 포장이나 부자재 사용을 최소화한다. 대표적인 판매 품목은 고체 치약이나 고체 비누 같은 생활용품, 플라스틱 대체품(대나무 칫솔, 스테인리스 빨대 등), 문구류, 유기농 식료품, 재사용 가능한 다회용기 등이 있다.
이러한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특징 중 하나는 ‘체험형 서비스’가 많다는 것이다. 단지 포장 없이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비누·립밤·수세미 등을 만들어볼 수 있는 워크숍을 상시 운영하거나, 쓰레기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왜 쓰레기를 줄이는 게 중요한가’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를 실천으로 배우는 기회를 얻는다. 특히 일부 매장은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해 재활용 소재 제품을 전시하고, 인근의 사회적기업·협동조합과 협업하여 로컬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한국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증가 추세는 다음 표에서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아래 표는 여러 언론보도·민간기관 조사 등을 참고하여 추정한 가상의 예시 수치를 포함하고 있음)
연도 | 제로웨이스트 상점 수(개) | 연평균 증가율(%) | 주요 특징 |
---|---|---|---|
2016 | 1 | – | 국내 첫 제로웨이스트 상점 ‘더피커’ 오픈 |
2018 | 15 | 100%↑ | 수도권 위주로 확산, 체험형 워크숍 시작 |
2020 | 70 | 60%↑ | 코로나19 속 배달 용기 증가로 관심도 상승, 지역 상점 확대 |
2022 | 200 | 60%↑ | 전국 주요 도시로 빠르게 확산, 협동조합·사회적기업 참여 활발 |
2024 | 280 | 40%↑ | 카페·식료품점·생활용품점 등 업태 다양화 |
2025 | 300+ | 10%↑ | 대기업 자본 투자 증가, 종합 친환경 플랫폼화 |
이처럼 초기에는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소규모 매장이 생겨났지만, 이제는 광역시 및 중소도시까지 퍼져나갔으며, 운영 주체도 개인 사업자뿐 아니라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대기업 계열사 등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일부 매장은 당근마켓이나 중고거래 플랫폼과 연계하여, 재사용 가능한 생활용품을 교환하거나 판매하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나아가 ‘쓰레기 없는 결혼식’, ‘친환경 포장재 적용 캠페인’ 등 분야를 넘나드는 확장도 진행 중이다.
제로웨이스트 사례: 더피커와 함께그린협동조합
국내 제로웨이스트 매장의 시초로 알려진 ‘더피커’는 2016년 성수동에 문을 열었다. 더피커 송경호 대표는 “제로웨이스트 매장은 단순히 포장 없는 제품을 구매하는 곳이 아니라, 소비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재고해보는 장소”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친환경 인증을 받았거나 포장재를 최소화한 경우가 많으며, 고객이 가져온 다회용기에 직접 담아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플라스틱 포장재를 과연 언제, 왜 사용하는가?’ ‘내가 배출하는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송 대표에 따르면 한국에서 제로웨이스트 인식이 높아진 배경에는 반복되는 미세먼지 사태, 코로나19로 급증한 플라스틱 쓰레기,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폭우 등 ‘환경적 악재’들이 크고 작게 작용했다. 그는 “불필요한 포장과 부자재를 사용하는 기업에 행동 변화를 촉구하면서 실질적인 제도 개선도 앞당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형유통업체들도 점차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종이 포장재나 생분해성 재질을 도입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은 ‘박스 없이 배송’ 시도를 검토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사례로 ‘함께그린협동조합’을 들 수 있다. 함께그린협동조합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설립된 단체로, 제로웨이스트 문화 확산을 위해 적극적인 캠페인과 행사를 전개해오고 있다. 2024년까지도 매년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제로웨이스트 매장 관계자들의 공동 워크숍을 개최하고, 시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지연 함께그린협동조합 이사장은 “최근 제로웨이스트가 단순히 ‘플라스틱을 줄이는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결국 제로웨이스트란 내가 일으키는 행동이 다른 생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각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이 두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제로웨이스트가 특정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할 행동이라는 것이다.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찾고, 불필요한 쓰레기 배출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 자체가 학습의 기회가 된다. 특히 매장을 방문하고 직접 체험해본 이들은, 이후 일상생활에서도 ‘내가 과연 일회용품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 ‘재활용할 수 있는 물품임에도 그냥 버리는 건 아닌가?’ 등을 꾸준히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미래 전망과 정책 제언
제로웨이스트는 개인의 자발적인 실천에 기반을 두지만, 더 크게 확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 예컨대 상점과 카페, 식당에서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추가 인력·비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지원하거나 보조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유럽연합 일부 국가에서는 매장에서 일회용 포장재를 제공하지 않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벌금을 부과한다. 반대로 다회용기를 활용하는 매장에 대해서는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2025년부터 음료점·패스트푸드점을 중심으로 재사용 컵 보증금 제도를 시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시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보완하면 효과적인 정책 도구가 될 수 있다.
또한 관련 업계와 정부, 시민단체 간의 협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이 기술·마케팅·물류 측면에서 한층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대학과 연구소에서 친환경 포장재 개발이나 재활용 기술을 연구해 실용화되도록 연결하는 ‘산학협력’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제품이 어떤 재료와 과정을 거쳐 생산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량이나 오염물질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이처럼 수요 측에서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요구할 때, 기업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제품과 서비스 공급 방식을 개선하게 된다.
결국 제로웨이스트는 생태계와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관이자 실천 방식이다. 지구 환경이 본격적으로 경고음을 보내고 있는 2020년대 중반, 한국에서 제로웨이스트는 한때의 유행을 넘어 사회적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구호는 결코 어렵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주간과 같은 행사뿐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시는 음료 한 잔, 소비하는 식품 한 봉지를 어떻게 선택하고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포장을 거부하는 작은 행동이 쌓이면, 그것은 나아가 기업의 생산 및 유통 시스템마저 변혁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지구의 건강과 우리의 미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