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1. 제로 웨이스트, 정말 ‘쓰레기 제로’가 목표일까?

제로 웨이스트의 정의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가 배출하는 쓰레기를 ‘0’에 가깝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회용품의 범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정말 쓰레기를 하나도 배출하지 않는다”는 목표는 지나치게 무거운 과제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사용하는 포장지, 식품 용기, 택배 상자 등은 의도치 않게 우리의 손에 쥐여지고, 이 과정에서 ‘완벽한 무(無)쓰레기’를 지키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꾸준히 실천해 온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너무 거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100%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제시하다 보니, 오히려 많은 사람이 시작 전부터 겁을 먹거나, 실천 중 실패했을 때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제로 웨이스트 전도사’로 불리는 비 존슨(Bea Johnson)조차도, 완벽하게 쓰레기 없는 삶을 영위하지는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로 웨이스트가 단지 ‘쓸모없는 목표’는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서울환경연합이 2024년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제로 웨이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 덕분에, 환경 보호를 위한 실천 의지가 높아졌다는 응답이 전체 중 61%**나 되었다. 즉, 이름 자체가 강렬한 메시지로 작용해, 사람들에게 ‘필요 최소한 이상의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자’라는 동기부여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캐스린이라는 활동가 역시 “제로 웨이스트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정작 처음에 지구 환경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어도, 쓰레기를 줄이는 습관이 하나둘 늘어나다 보면 어느새 지구의 건강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로 웨이스트가 단순히 “쓰레기 없는 삶”을 넘어, **‘자기 동기 부여’와 ‘습관 개선’**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이유다.

결국, 제로 웨이스트가 지향하는 바는 ‘쓰레기 0’이라는 결과물 그 자체보다는, 우리가 배출하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그중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줄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다소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환경운동 업계에서 흔히 말하듯 ‘큰 꿈을 꾸는 것’이 도리어 더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여러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2. ‘왜?’라는 질문이 중요한 이유: 동기 부여와 지속가능성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나 가전제품, 편의점 음식, 택배 서비스 등 편의가 넘쳐나는 가운데, 굳이 일회용품을 줄이고 재사용을 늘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려면, 그 행동을 정당화해 줄 만한 ‘개인적 동기’가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내적 동기화(Intrinsic Motivation)”**라고 부르며, 특히 장기적이고 꾸준한 실천을 위해서는 내적 동기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캐스린의 사례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지구 생태계가 아니라 개인의 경제 사정과 건강 문제 때문에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지출을 아끼려 했다. 하지만 그 실천 과정에서 일회용품이 얼마나 많은 환경호르몬을 배출하는지, 불필요한 포장이 얼마나 과도한 쓰레기를 양산하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지금은 누구보다 ‘지구를 위한 삶’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스스로가 “왜 나는 이걸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나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의 국립환경연구소가 2023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이 친환경 습관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핵심 요인은 ‘개인적 동기 부여’와 ‘행동의 의미에 대한 명확한 이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보고서는 약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처음에는 타인의 강요나 사회적 트렌드 때문에 시작했다 해도, 결국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이 연결되어야만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도출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움되는 방법이 바로 ‘내가 왜 이걸 하려는 거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써 보는 것이다. 예컨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든 “기후 위기가 너무 두렵기 때문”이든, ‘왜’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변해 놓으면, 행동 동기가 흔들리는 순간 그 답을 다시 확인함으로써 자신을 다잡을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가끔은 “귀찮은데 그냥 일회용품 쓸까?”라고 생각이 들 때, “나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실천 중이었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 행동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나아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왜 하는지’를 공유한다면, 이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공동체와 지구에 대한 책임’임을 공감대화할 기회가 된다. 그리하여 작지만 의미 있는 습관이 모이고 서로에게 시너지를 주면, 한 집단—가정, 직장, 커뮤니티—차원에서도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3. ‘내 결심도 지속가능한가?’: 게으름과 현실을 고려한 전략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사실 중 하나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행동이 과연 내 생활 리듬에 맞는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이나 노력이 요구되면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게 된다. 예컨대, 비닐과 종이, 플라스틱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지만, 너무 복잡한 분리 과정 때문에 실천이 번번이 미뤄지는 경험을 한 번쯤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캐스린이 강조하는 접근법 중 하나가 바로 **“나만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행동을 현실적으로 평가해 보는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에는 “한 시간 미만으로 끝낼 수 있는가?”, “한 번 만들어두면 6개월은 쓸 수 있는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가?” 같은 항목이 포함된다. 혹자는 이런 항목을 다소 사소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결국 개인의 성향과 생활 패턴에 맞아야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일례로, 직접 식빵을 굽고 각종 소스를 만들어 먹는 것이 이상적으로 보일지라도, 평소 요리에 30분 이상 투입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이 방법은 오래가기가 어렵다. 차라리 일주일치 요리를 미리 준비해 냉동실에 보관하는 “배치 쿠킹(batch cooking)” 방식을 택하거나, 쓰레기가 최소화된 간편조리 식품을 꾸준히 개발·구매하는 편이 더 실현 가능할 수 있다.

국내 한 리서치 기관(2024년 KIR Research)의 조사에 따르면,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지만 실천하다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 중 65%가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어서”라고 답했다. 그만큼 ‘게으름’과 ‘시간 부족’은 누구에게나 현실적인 장애물인 셈이다. 결국 핵심은, 내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범위를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조건 매일 천연 세제 만들기에 매달리는 대신, 유통 기한이 긴 천연 세제를 한 번 만들어두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빈도로 세제를 소진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빨래가 너무 귀찮다면, 옷을 최소한으로 갖추고 쉽게 세탁할 수 있는 소재로 교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요컨대, 자신의 ‘게으름 지수’와 ‘시간 사용 패턴’을 솔직하게 진단하고, 그 안에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 곧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메시지는, 제로 웨이스트 전문가들과 심리학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바이기도 하다.


4. 주변 사람과의 온도차: 강요 대신 묵묵히 모범 보이기

“나는 이렇게 애쓰는데, 왜 가족이나 친구들은 협조하지 않을까?”—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이들이 자주 느끼는 고민이다. 공동의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가족, 룸메이트, 직장 동료 등)이 협조적이지 않으면, 내 노력의 효과가 반감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스린은 “가족과 지인에게 나와 같은 방식을 강요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제아무리 옳은 목적이라고 해도, 상대가 원치 않는다면 갈등과 반감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미국 행동심리학회(American Behavioral Psychology Association)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가족이나 지인에게 친환경 행동을 ‘강제’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는 통계가 제시되었다. 부부나 동거인이 일회용품 사용, 분리배출 방법 등을 두고 갈등을 빚으면, 상대방이 완전히 등을 돌리거나 실제 실천률이 더욱 낮아지는 현상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캐스린은 **“시간, 인내심, 친절”**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강조한다. 자신이 먼저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어, 저 방식도 나쁘지 않네(It just makes sense!)”라고 느끼도록 기다려 주라는 얘기다. 설령 주변 사람이 끝까지 바뀌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들만의 자유이며, 굳이 갈등을 일으켜가며 강제할 부분이 아니라는 태도다.

이렇게 관대한 태도를 유지하다 보면, 의외로 시간이 지난 뒤에 가족이나 동료가 슬며시 동참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내가 집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철저히 줄이는 모습을 보며 큰 관심 없던 남편이 어느 날 “이거 이렇게 하면 정말 쓰레기가 덜 나오네?”라며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는 식이다. 영국 그린소사이어티가 2023년 영국 가구 500세대를 분석한 결과, **“부부 중 한 명이 먼저 제로 웨이스트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뒤, 상대 배우자의 동참률은 70% 이상”**이었다고 한다.

결국, 타인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나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되, 절대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해도 주변인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캐스린 말처럼, 그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므로 존중해야 한다. 제로 웨이스트는 “남에게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기도 한 동시에, 주변에 긍정적 영향을 퍼뜨릴 수 있는 생활양식”이다.


5. 나만의 실천에서 사회적 변화로: 시민 목소리와 ESD 사례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대개 개인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스템 자체의 변화”**가 이뤄져야 진정한 효과를 발휘한다. 예컨대, 내가 아무리 열심히 분리배출을 해도, 지자체나 국가 차원의 재활용 인프라가 부실하면 쓰레기가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또한, 기업이 여전히 과도한 포장재를 남발하면 소비자가 이를 회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인 차원의 노력이 사회와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UNEP(유엔환경계획)이 2024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민 참여가 강화된 도시일수록 일회용품 사용량 감소율이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정치 참여, 청원, 공청회, 거리 행진 등을 통해 ‘재활용 확대, 다회용기에 대한 지원,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등의 정책을 끊임없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추진 중인 일회용품 보증금 제도 시범사업은, 수많은 시민 단체의 요청과 논의 끝에 탄생했다. 거리 청소 자원봉사나 분리배출 캠페인이 활성화된 지역일수록, 시범사업 참여율도 높게 나타나는 추세다.

이처럼 제도와 정책 차원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력한 수단이 바로 **ESD(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지속가능발전교육)**이다.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채택하고 있는 이 교육 모델은, 기후변화·생물다양성·자원 문제 등을 학교와 지역사회 교육에서 핵심 의제로 삼으라는 골자를 담고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또한 국내 환경에서 ESD 실천 사례를 발굴해 공식프로젝트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2011년 도입 이후 지금까지 누적 175개 프로젝트가 인증을 받았고, 그중 82개는 현재도 왕성히 활동 중이다.

이 프로젝트들은 지역별 특징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예컨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폐기물 줄이기 동아리를 꾸려 학생들이 직접 텀블러 사용 캠페인을 벌이고, 이를 분석해 학교 급식과정에서 플라스틱 발생을 줄이는 개선안을 제안했다. 부산의 한 마을에서는 어촌계와 협력해 해안 쓰레기 분리를 추진하는 동시에, 해당 자원을 예술 작품이나 리폼 제품으로 만드는 재활용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이런 시도들은 개별 시민을 넘어 공동체 차원의 변화를 일으키고, 궁극적으로 지역 사회가 지속가능성을 함께 학습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단순한 ‘1인 캠페인’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부터 국가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는 거대한 흐름”**이다. 시민의 목소리가 제도와 정책을 움직이고, 이를 통해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면, 다수의 사람에게 친환경 행동이 한결 쉽고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마무리: 완벽하지 않아도, ‘더 나은 선택’의 가치

많은 사람이 “제로 웨이스트”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부담을 느낀다. 정말로 쓰레기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운동의 본질은 ‘0이라는 숫자’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Less Waste”로 불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름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 행위를 계속할 수 있는 **‘동기’와 ‘지속가능성’, 그리고 ‘포용적 태도’**다.

이번 글에서 살펴본 캐스린의 조언과 ESD 공식프로젝트 사례들은 모두, “조금 더 쉽고, 부담 없이, 나만의 속도에 맞춰 가면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 준다. 오늘 당장 모든 일회용품을 끊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원하는 만큼 천천히 바꿔 나가되, 그 방향이 ‘지구에 도움이 되는 쪽’을 향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발걸음들이 모여, 결국은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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