숍


1. 탈(脫) 플라스틱, 왜 지금 필요한가

최근 지구 곳곳에서 미세플라스틱 검출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고래 뱃속에서 6㎏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된다는 보도는 이제 그리 놀랍지 않을 정도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간의 혈관과 태반에서조차 미세플라스틱이 확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환경과학 저널(Nature Sustainability)이 2024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4억 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으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일회용품으로 사용된 뒤 자연에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바다와 육지 생태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양에 유입된 플라스틱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플라스틱 형태로 쪼개지고, 결국 해양 생물을 거쳐 우리의 식탁으로 돌아온다. 플라스틱 포장재, 배달 음식용 용기, 생수병 등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편리한 제품들이 사실상 환경오염과 맞닿아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필환경(必環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50년까지 약 330억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나올 것”이라는 추산치를 제시하며,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하고 있다.

결국 탈(脫) 플라스틱을 위한 실질적인 해법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이다. 쓰레기 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활용, 재사용, 리필 문화를 정착시키고, 불필요한 포장이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본문에서는 전주에 위치한 ‘늘미곡’이라는 잡곡 소분 숍을 중심으로, 국내 제로 웨이스트 상점들이 어떻게 지역사회와 협력해 ‘착한 소비’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각자의 생활 영역에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늘미곡’의 소분 문화: 잡곡으로 시작하는 제로 웨이스트

전주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숍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문을 연 ‘늘미곡’은, 이름에서부터 미곡(米穀) 즉 곡물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흔히 화장품이나 세제를 소분 판매하는 리필 스테이션과는 달리, 쌀·기장·서리태·율무 같은 잡곡을 소분 판매하는 점이 특징이다. 전주를 비롯한 호남평야와 국내 각지에서 공수한 신선한 곡물을 디스펜서 안에 종류별로 담아두고, 고객은 직접 가져온 용기나 종이봉투에 원하는 만큼 덜어가면 된다. 이렇게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시스템은 자원 낭비를 막고, 포장재 사용을 최소화한다는 이점이 있다.

(1) 가격 절감과 자원 절약

늘미곡에서는 다회용기 지참 시 5%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단순히 ‘환경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경제적 이득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2023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리필 매장에서 세제나 곡물을 구매하는 고객 중 65%가 “경제적 이점”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를 통해 일회용 포장재 쓰레기를 줄이면서도 가계부담을 덜 수 있는 셈이다.

(2) 친환경 상품 라인업: ‘나슬(Nasl)’ 시리즈

잡곡 소분 외에도 천연 통수세미, 국내산 면으로 만든 강화 소창 수건,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스테인리스 빨대, 순면 생리대 등 다양한 친환경 용품이 판매된다. 흥미로운 점은 밀랍랩, 건조기용 양모볼처럼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제품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상품군을 늘미곡에서는 **‘나슬(Nasl)’**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우즈베크어로 ‘후대, 자손’을 의미함과 동시에 한국 사투리의 “더 낫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냈다고 한다.

(3) 청년 사장, 서늘 대표의 도전

늘미곡을 운영하는 서늘 대표는 과거 기업에서 대기 환경기사로 일하며 환경 문제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제로 웨이스트 숍을 개업하면서도 환경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비해야 했다고 한다.
“스테인리스 빨대가 왜 환경에 좋다고 하는지 처음엔 이해 못 했어요. 생산 공정에서 폐수가 발생할 텐데? 하지만 내구성과 재사용성을 생각하면, 일회용품보다 훨씬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서늘 대표는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기보다, 조금씩 줄여나가는 레스 웨이스트(less waste)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분리배출만 잘 해도 큰 변화를 이끌 수 있고, 실제로 30% 이상의 재활용률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늘미곡은 단순한 ‘소분 숍’을 넘어, 지역사회에 제로 웨이스트 문화를 소개하고, 일상 속에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체험케 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잡곡이라는 기본 식재료부터 출발해 친환경적인 생활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나아가 지자체나 협력 단체와 연계한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등 점차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3. 국내 제로 웨이스트 숍 동향과 데이터 분석

제로 웨이스트 숍이란 단순히 친환경 제품만 판매하는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리필 스테이션, 소분 판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지역 사회에 올바른 소비 문화를 전파하는 ‘거점’ 역할을 한다. 2024년 현재, 국내 제로 웨이스트 숍은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각지로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아래 표는 2023~2024년에 걸쳐 국내 제로 웨이스트 숍과 관련된 주요 현황 및 통계를 요약한 것이다. (일부 수치는 환경부·민간단체 자료 등을 바탕으로 추정한 값이다.)

구분수치/현황출처
국내 제로 웨이스트 숍 추정 수(2024년)약 200~250곳환경단체·온라인 커뮤니티 조사 종합(2024)
지역별 분포수도권 60% 이상, 지방 대도시 및 중소도시에서도 확대국내 지자체·SNS 분석
주요 판매 아이템세제·샴푸 리필(소분), 친환경 식품, 다회용 빨대·칫솔 등숍 운영자 인터뷰 자료
신규 개업 대비 폐업 비율(2023~2024)폐업률 약 12% (시장 정착 단계로 추정)‘제로웨이스트 상점 연합’ 자체 조사
소비자 인식 변동‘리필 구매 경험 있음’ 응답자 2021년 15% → 2023년 22%한국소비자원 설문 (2024년 발표)

(표) 국내 제로 웨이스트 숍 시장 현황 (2023~2024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제로 웨이스트 숍은 2021년 이후 빠르게 증가해 2024년 현재 200곳 이상이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권 지역에 집중되어 있긴 하지만, 전주 등 중소도시에서도 의미 있는 성장이 이어지는 중이다. 다만 아직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탓에 운영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원책이나 민간 협업 모델이 더 활발히 도입될 경우, 성장 속도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있다.


4.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부터 시작하는 제로 웨이스트

대다수 사람에게 제로 웨이스트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심지어 용기를 챙겨서 장을 보거나, 일회용품을 피하기 위해 배달 주문을 줄이는 일은 “귀찮고 번거롭다”라는 인식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시각을 달리 보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는 생활 습관들이 많다.

  1. 가장 간단한 첫걸음: 분리배출
    환경부가 2023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가정 내 쓰레기 중 약 30%는 재활용 가능 품목이지만, 제대로 분리배출되지 않아 소각되거나 매립지로 향한다. ‘유리 병과 페트병을 섞지 않는다’, ‘플라스틱 뚜껑을 분리한다’ 등 기본 규칙만 지켜도 재활용률이 크게 올라간다.
  2. 일회용품 덜 쓰기
    장바구니, 텀블러, 개인 용기 등을 휴대하는 습관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이끈다. 배달 앱 주문 시 ‘일회용품 안 받기’ 옵션을 활성화하는 것도 간단한 방법이다. 이렇게 사소한 행동이 쌓이면, 플라스틱 수저와 포크, 비닐봉투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3. 리필 문화 체험하기
    세제, 샴푸, 각종 식재료를 리필 스테이션이나 소분 숍에서 구매해 보자. 처음에는 용기를 준비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적절한 할인 혜택과 ‘필요한 만큼만 산다’는 경제성이 주목받으며 리필 구매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4. 주변 사람들과 정보 공유
    SNS나 동네 커뮤니티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 숍이나 리필 스테이션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주 가는 카페에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을 권장하는 포스터를 붙이거나,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대나무 칫솔 단체 구매를 추진하는 식도 가능하다.
  5. 스스로에게 관대한 태도
    제로 웨이스트는 완벽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플라스틱을 끊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차라리 100명의 사람이 조금씩 쓰레기를 줄이는 편이, 1명이 완벽하게 제로 웨이스트를 하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가 있다”고 조언한다. 중요하게 남는 건, “오늘부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고 조금씩 실천하는 자세다.

실제로 환경심리학 분야 연구(서울대학교, 2024)에 의하면, 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제로 웨이스트 경험을 조사했을 때, 65% 이상이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적응하고 나면 오히려 지갑 사정에도 이롭고 생활 습관이 단순해져 편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더 넓게 확산될 잠재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 ‘제로 웨이스트’, 다 같이 만드는 작은 변화의 시작

플라스틱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지구를 병들게 하는 주원인이 되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50년까지 330억 톤이라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이 쌓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감을 반영하듯, 제로 웨이스트 숍은 우리 생활권 곳곳에서 이미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전주에 위치한 잡곡 소분 숍 ‘늘미곡’ 사례만 보더라도, 단순히 상품을 팔고 사는 것을 넘어 자원순환과 친환경 문화를 공유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시민들은 자신이 직접 가져온 용기에 곡물을 담고, 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구입하면서 일회용 포장재의 남용을 피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조금은 번거롭지만, 결국엔 더 나은 선택’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아직은 초기 단계여서, 사람들의 인식이나 제도적 지원 면에서 부족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2024년 현재, 리필 스테이션과 제로 웨이스트 숍이 전국적으로 약 200~250곳에 이르고 있으며, 관련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더 많은 소비자가 이런 변화를 지지하고, 소소한 실천을 이어갈 수록 대형마트나 지자체, 기업 역시 ‘환경을 위한 변혁’을 적극 고민하게 될 것이다.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가 아니어도 좋다. 집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조금 덜어내고, 배달 앱에서 일회용품을 거절하며, 분리배출 습관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지구와 후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착한 소비”라고 해서 늘 비싸거나 특별한 것은 아니다. 때론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바꿔보는 용기가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을 만들어주는 공간이 바로 “제로 웨이스트 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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