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토큰

예금 토큰의 바우처 기능: 복잡한 행정 절차를 단숨에 줄이다

예금 토큰(tokenized deposit)은 시중은행 예금 잔액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한 뒤, 토큰에 ‘조건부 지급(바우처)’ 속성을 직접 코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지역화폐·상품권 사업과 결정적으로 구별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진행 중인 바우처 시범 사업은 문화·교육·복지 카테고리별 사용할 금액 한도를 스마트 계약에 미리 입력해 두고, 사용자가 편의점·온라인몰 등에서 QR 결제만 하면 ▲카테고리 체크 ▲잔액 차감 ▲정산까지 백엔드에서 자동으로 끝나는 구조다.

기존 복지·지역화폐 사업은 실물 카드 발급→승인망 연결→정산 파일 교환 과정을 거치느라 행정비 부담이 컸지만, 예금 토큰은 ‘결제 = 정산’이라는 DLT 특유의 원스텝 구조를 구현한다. 더 나아가 예산 집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어 정부 회계 투명성과 정책 피드백 주기도 크게 단축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싱가포르 MAS의 ‘Purpose Bound Money’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국내 상용 결제 인프라에 탑재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범용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범용·기관용 CBDC가 은행에 미칠 잠재적 충격

범용(retail) CBDC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통화이므로 소비자와 기업이 직접 중앙은행에 계좌(혹은 지갑)를 둘 수 있다. 만약 범용 CBDC가 대중적으로 채택되면 시중은행 예금이 중앙은행 디지털 지갑으로 유출돼 대출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디지털 뱅크런’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국제결제은행(BIS)이 2024년 6월 공개한 설문을 보면 “은행 유동성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CBDC 잔액 한도나 무이자 정책을 고려한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반대로 기관용(wholesale) CBDC는 은행 준비금‧청산용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기존 이중통화체제(현금·예금)를 흔들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예금 토큰을 은행이 발행하고 결제 최종성을 기관용 CBDC(지급준비금 토큰) 로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택했다. 은행권 자금 운용 구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스마트 계약 기반 혁신을 테스트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프로젝트 한강’ 1차 테스트: 7만 지갑·4만5천 건 결제가 남긴 성과와 과제

2025년 4~6월 진행된 프로젝트 한강 1차 테스트에는 7만 5,000여 개의 디지털 지갑이 개설됐고, 오프라인 결제 4만 5,000건을 포함해 총 8만 6,000건의 실거래가 집계됐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평균 1.8초 이내로 거래를 확정(파이널리티)했으며, 스마트 계약을 통한 바우처 인정·정산 자동화 덕분에 행정 처리 시간은 최소 70% 이상 단축됐다는 내부 추정치가 나왔다.

다만 △신분·계좌 연동 과정의 KYC 인증 절차가 복잡해 참가 이탈률이 높았고 △지역화폐·카드 캐시백 등 기존 제도와의 통합 UX가 부족해 ‘결제 전에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사용자 불만도 확인됐다. 한국은행은 하반기에 참여 인원 10만 명, 결제 가맹점 3,000곳으로 범위를 넓히고 NFC 기반 오프라인 결제·오프그리드(무통신) 결제 기능도 병행 검증할 계획이다.


글로벌 CBDC 로드맵과 한국의 위치

전 세계 134개 국가(전 세계 GDP의 98%)가 CBDC를 연구·개발 중이며, 그중 66개국은 ‘개발·파일럿·발행’ 등 고도화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은 예금 토큰·기관용 CBDC를 결합한 복합형 모델로 ‘고급 파일럿 그룹’에 속한다. 아래 표는 Atlantic Council CBDC Tracker와 최근 공공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현황이다.

단계국가 수대표 사례특징
발행 완료3바하마, 나이지리아, 자메이카리테일 결제 상용 운영
대규모 파일럿44중국(e-CNY), 브라질, 인도, 유럽(디지털유로)온·오프라인, 교차국경 테스트
개발 단계19한국(프로젝트 한강), 호주(e-AUD)법제화 및 기술 스펙 확정 중
연구 단계68미국, 영국, 캐나다 등개념증명·정책 연구 중심

파일럿 규모(인구 10만 명)는 한국이 중국·브라질 다음으로 큰 편이며, 예금 토큰과 기관용 CBDC를 병행하는 국가는 아직 드물다. 이 같은 ‘토큰화된 예금+CBDC’ 이중 구조는 글로벌 도매 결제 실험(Project Agorá, mBridge 등)에도 호환될 가능성이 높다.


리스크 관리와 규제 프레임워크: 무엇을 점검해야 하나

CBDC·토큰화된 예금이 본격 상용화되면 ▲사이버 공격 ▲프라이버시 침해 ▲통화정책 전파 경로 변화 ▲은행 유동성 리스크 등 새로운 위험 요인이 등장한다. OMFIF·FT 설문에 따르면 “CBDC가 크로스보더 결제에 만능 솔루션이 아니라”고 답한 중앙은행 비율이 1년 새 31%→13%로 급감하는 등 글로벌 기대치도 현실화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은행이 이번 시험에서 채택한 잔액 상한선·KYC 인증·오프라인 결제 한도 같은 ‘안전장치’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전자금융거래법·개인정보보호법·특금법 간 교차규제를 정교하게 조정해야 한다. 특히 토큰화된 예금이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와 충돌하지 않도록 ‘은행 발행 자산’ 정의를 명확히 하는 별도 하위법령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개발자를 위한 전략적 시사점

은행·핀테크 투자 기회: 바우처 API, 스마트 계약 관리 솔루션, 인증 모듈 분야 스타트업에 전략적 자본이 몰릴 전망이다. ② 인프라 표준화 기여: KFTC·한국은행이 주도하는 스마트 계약 관리기관(SCMA) 표준 초안이 연내 공개될 가능성이 높아, 블록체인 개발사는 호환 모듈을 선제 개발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협업 레버리지: Project Agorá·mBridge와 같은 국제 도매 CBDC 테스트에 투입될 국내 은행·IT기업 컨소시엄이 늘어나면서, 크로스체인 메시지·제로지식증명(zk-proof) 기반 프라이버시 모듈 수요가 커질 전망이다. ④ 데이터 비즈니스: 스마트 계약이 생성하는 ‘조건부 지급 데이터’는 정부·기업 ESG 지출 모니터링으로 확장될 수 있어, 데이터 중개·시각화 플랫폼 또한 유망하다. 결국 예금 토큰과 CBDC는 ‘결제 혁신’에 국한되지 않고 거버넌스‧데이터 경제 전반을 재편할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

한국은행의 프로젝트 한강은 예금 토큰(민간 영역)과 기관용 CBDC(중앙은행 영역)를 결합해 디지털 머니의 역할 분담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에 중요한 벤치마크를 제시하고 있다. 1차 테스트에서 드러난 UX·인증 과제만 해결된다면, 복지 바우처·지역화폐·크로스보더 정산까지 통합된 “프로그래머블 현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자산 시장 참여자라면 이제 ‘단순 결제’가 아닌 스마트 계약 기반 정책 · 데이터 생태계를 함께 설계하는 플레이북을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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